물건을 하나 사고 나서도 ‘내가 잘 산 게 맞나?’ 싶어서 후기를 계속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사기 전에는 이것저것 비교하면서 꽤 고민해서 선택했는데, 막상 결제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좋은 후기를 보면 ‘역시 잘 샀어’ 하고 안심이 되는데, 좋지 않은 후기를 보면 ‘저 사람은 나랑 사용하는 환경이 다르니까’, ‘그 정도 단점은 감수할 만하지’ 하면서 나름대로 이유를 붙여 넘기기도 했습니다.
이미 선택은 끝났는데도 내 선택이 괜찮았다는 확인을 계속 받고 싶었던 거죠.
이런 경험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심리학 개념이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입니다.
인지부조화란 무엇일까?
인지부조화는 서로 잘 맞지 않는 생각이나 믿음, 태도, 행동이 동시에 존재할 때 느끼는 심리적인 불편함이나 긴장을 말합니다.
이 개념은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1957년 제시한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어느 정도 일관되기를 원하는데, 서로 모순되는 정보가 생기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을 위해 술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술을 마신다면 생각과 행동 사이에 불일치가 생길 수 있어요.
이때 행동을 바꿔 술을 줄일 수도 있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생각을 바꾸거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불편함을 줄이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지부조화가 단순히 ‘생각이 두 개라서 혼란스러운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지 않는 인지 사이에서 생기는 불편함과 그것을 줄이려는 과정까지 함께 살펴보는 개념이라는 점입니다.
내가 산 물건의 좋은 후기만 더 보고 싶은 이유
제가 물건을 산 뒤 후기를 계속 확인했던 경험도 인지부조화를 이해하기 좋은 사례였습니다.
구매하기 전에는 여러 제품의 장단점을 비교할 수 있지만,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내가 선택한 제품에도 단점이 있고 선택하지 않은 제품에도 장점이 있다는 사실은 ‘나는 좋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조금 불편하게 만들 수 있어요.
이때 내가 산 제품의 좋은 후기를 보면 선택에 대한 확신이 커지고 마음도 편해집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후기를 봤을 때 그 내용을 객관적으로 다시 생각하기보다 ‘저건 특별한 경우겠지’라고 이유를 붙여 넘긴다면 내 선택과 불편한 정보 사이의 충돌을 줄이려는 반응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구매 후 후기를 확인하는 행동이 모두 인지부조화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사용법이나 실제 단점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볼 수도 있고, 단순히 제품에 관심이 생겨 후기를 더 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다만 이미 선택을 끝낸 뒤 유독 내 선택을 지지하는 정보에서 안심하고 반대되는 정보는 받아들이기 싫어진다면 인지부조화라는 개념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선택하고 나면 내가 고른 것이 더 좋아 보일 수 있어요
인지부조화 연구에서 잘 알려진 것 중 하나가 자유선택 패러다임(free-choice paradigm)입니다.
1956년 잭 브렘(Jack Brehm)은 참가자들에게 여러 가전제품을 평가하게 한 뒤 두 제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이후 다시 제품을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선택한 제품은 이전보다 더 좋게, 선택하지 않은 제품은 상대적으로 덜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변화는 결정을 내린 뒤 남아 있는 갈등이나 불편함을 줄이는 과정으로 설명돼 왔습니다.
그래서 큰돈을 쓰는 물건뿐 아니라 메뉴를 고르거나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결정 뒤에도 비슷한 마음을 경험할 수 있어요.
‘다른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내가 이걸 고른 게 맞나?’라는 불편함이 생기면 내가 선택한 쪽의 장점을 더 크게 보거나 선택하지 않은 쪽의 단점을 더 눈여겨보게 될 수 있다는 거죠.
지루한 일을 했는데 왜 1달러를 받은 사람이 더 재미있다고 했을까?
인지부조화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고전적인 연구가 페스팅거와 칼스미스(Festinger & Carlsmith)의 1959년 실험입니다.
참가자들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과제를 한 뒤 다음 참가자에게 그 일이 재미있었다고 말하도록 요청받았습니다.
이때 일부 참가자는 1달러를, 다른 참가자는 20달러를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적은 보상인 1달러를 받은 참가자들이 20달러를 받은 참가자들보다 과제를 실제로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20달러를 받은 사람은 ‘돈을 많이 받았으니까 재미있다고 말한 것’이라는 충분한 외부 이유가 있었지만, 1달러를 받은 사람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만한 외부 이유가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지루한 일이었는데 나는 왜 재미있다고 말했지?’라는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과제에 대한 태도가 더 긍정적으로 바뀐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이 실험은 행동과 태도가 서로 맞지 않을 때 사람이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태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인지부조화 이론의 대표적인 연구입니다.
인지부조화가 생기면 어떻게 줄이려고 할까?
인지부조화가 생겼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운동을 미루는 것이 불편하다면 실제로 운동을 시작함으로써 생각과 행동을 맞출 수 있습니다.
반대로 행동을 바꾸지 않고 생각을 바꾸기도 합니다. ‘요즘은 너무 바쁘니까 운동을 못 하는 게 당연해’라고 생각하면서 불편함을 줄이는 식이에요.
새로운 정보를 추가해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거나, 문제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는 방식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현실에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고 모든 결정 뒤에 남는 불편함을 계속 안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내 선택을 지키기 위해 불리한 정보는 무조건 무시하고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는 일이 반복된다면 판단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인지부조화와 합리화는 같은 말일까?
인지부조화를 설명하다 보면 합리화라는 말도 자주 등장합니다.
둘은 관련이 있지만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인지부조화는 서로 맞지 않는 생각이나 행동 때문에 생기는 심리적인 불편함과 그에 따른 변화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합리화는 받아들이기 불편한 행동이나 결과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자신을 납득시키는 심리적 반응을 말합니다.
즉 인지부조화가 생겼을 때 불편함을 줄이는 과정에서 합리화와 비슷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지만, 인지부조화 자체가 곧 합리화라는 뜻은 아닙니다.
앞서 제가 구매 후 좋지 않은 후기를 보면서 ‘저 사람은 나랑 상황이 다르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했던 것도 실제 차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한 것일 수도 있고, 내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반응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 하나만 보고 무조건 인지부조화나 합리화라고 단정하기보다는 내가 불편한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편이 더 유용합니다.
내 선택을 믿는 것과 불편한 정보를 외면하는 것은 달라요
물건 하나를 사는 일처럼 작은 선택에서도 우리는 ‘내가 잘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선택한 뒤 좋은 점을 발견하고 만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미 내린 선택을 지키기 위해 반대되는 정보를 전부 무시한다면 나중에 더 나은 판단을 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어요.
저도 구매 후 후기를 계속 찾아보는 제 모습을 생각해보면 정말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인지, 아니면 ‘잘 샀다’는 확인을 받고 싶은 것인지 한번 구분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지부조화를 안다고 해서 이런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왜 특정 정보에는 안심하고 다른 정보에는 유난히 방어적으로 반응하는지를 한번 돌아볼 수는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모든 선택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선택과 맞지 않는 정보가 나왔을 때도 그것을 한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Festinger, L. & Carlsmith, J. M. (1959), Cognitive consequences of forced compliance
적은 외적 보상과 태도 변화의 관계를 통해 인지부조화를 살펴본 대표적인 고전 연구입니다.
Brehm, J. W. (1956), Postdecision changes in the desirability of alternatives
선택을 한 뒤 선택한 대안과 선택하지 않은 대안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본 자유선택 패러다임의 대표적인 연구입니다.
※ 이 글은 인지부조화에 관한 일반적인 심리학 정보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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