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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직장인 번아웃, 저는 이렇게 무너졌습니다|우울증·휴직 그리고 복직 후 달라진 것

by riojella 2026. 4. 30.

저는 원래 일을 열심히 하는 편이었고, 인정받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빠른 승진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조금 이른 나이에 승진했고, 그와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업무와 책임자의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잘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배웠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잘 이끌어보려고 애썼습니다. 주야간 교대근무를 반복하면서도 제 근무시간이 아닐 때까지 일을 챙겼습니다.

 

돌이켜보면 약 2년 동안 제 삶에는 일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이 힘들어도 배우면 됐고, 모르는 것은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책임자가 된 뒤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업무는 노력해서 배울 수 있지만, 조직은 내 노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방향과 윗선의 판단이 계속 부딪혔고,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와 관행도 있었습니다.

 

주변에서도 제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제 노력을 인정해줬지만, 결국 돌아오는 말은 비슷했습니다.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조직의 관행상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참고 설득했습니다.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리 애써도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의욕은 조금씩 꺾였습니다.

 

그렇다고 일을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후배들을 보면 적어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과 내가 바꿀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계속 버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쌓여도 참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예전 같으면 참고 설득했을 일에도 자꾸 화가 났습니다.

 

몸도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고 잠도 무너졌습니다. 술을 마셔야 잠이 들 수 있었고, 잠이 들어도 회사 꿈을 꾸다가 깨곤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술에 기대 잠들던 것 역시 제 상태가 많이 무너져 있었다는 신호 중 하나였습니다.

 

회사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는 회사가 나인지, 내가 회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일과 제 삶의 경계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결국 더 이상 이렇게 지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아웃은 정확히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너무 지치거나 일이 싫어질 때 ‘번아웃이 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ICD-11에서 설명하는 번아웃은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WHO는 번아웃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 직업적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질병 자체로 분류하지는 않습니다.

 

핵심 특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소진되는 느낌, 일과 심리적으로 멀어지거나 일에 부정적·냉소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 그리고 자신의 직업적 효능감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WHO의 번아웃 개념이 직업 영역에 한정된다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피로나 스트레스를 번아웃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번아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고, 반대로 심각한 증상을 모두 번아웃이라는 말 하나로 설명해서도 안 됩니다.

 

저는 결국 우울증 진단도 받았습니다

 

저에게 특히 중요했던 부분은 여기였습니다.

 

당시 저는 단순히 일이 너무 힘들어서 번아웃이 심하게 온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을 찾았고 우울증 진단을 받아 약물치료도 받았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제가 생각했던 우울증은 꽤 극단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계속 슬프고 우울하거나 아주 충동적이고 힘든 감정이 들어야 우울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실제로 겪은 모습은 달랐습니다. 화가 많아지고 예민해졌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몸도 아팠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우울증은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슬픈 감정’ 하나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WHO 역시 우울증에서 우울하거나 공허한 기분뿐 아니라 짜증이 두드러질 수 있고,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 수면 변화, 피로와 에너지 저하, 집중력 저하, 과도한 죄책감이나 낮은 자기평가 등 여러 증상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화가 나거나 잠을 못 자거나 몸이 아프다고 해서 모두 우울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증상의 종류와 지속 기간, 일상 기능에 미치는 영향 등을 함께 살펴야 하므로 스스로 진단하기보다는 필요할 때 전문가의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울증은 생각했던 것보다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제가 이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꼭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는 일을 굉장히 무겁고 특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병원에 가고 치료를 받아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우울증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WHO도 우울증을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흔한 정신건강 질환으로 설명하고 있고, 효과적인 치료가 있다고 안내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우울증을 숨겨야 할 대단한 일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마음과 몸이 계속 힘들 때 진료를 받고 치료받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우울증이 ‘감기처럼 가볍고 사소한 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일상 기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고 심한 경우에는 생명과도 관련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병의 심각성을 낮춰 보자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이라는 이름 때문에 치료받는 것까지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아픈데 계속 버티는 것보다 ‘지금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더 중요했습니다.

 

번아웃과 우울증은 같은 걸까?

 

번아웃과 우울증을 완전히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WHO의 정의에서 번아웃은 직장 스트레스와 관련된 직업적 현상이고, 우울증은 일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신건강 질환입니다.

 

그렇다고 두 가지를 증상 몇 개만으로 깔끔하게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번아웃과 우울증의 관계를 검토한 연구에서는 두 현상이 상당 부분 겹칠 수 있고, 둘을 얼마나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지를 두고 학술적인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금 와서 당시의 모든 증상을 ‘이건 번아웃, 이건 우울증’이라고 하나씩 나누고 싶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일 때문에 심하게 소진되어 있었고, 동시에 병원에서 우울증을 진단받아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번아웃이라고 생각하고 쉬기만 하면 된다고 판단하기보다는 수면이나 감정, 신체 상태가 크게 무너지거나 일상생활까지 어려워지고 있다면 의료적인 도움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저는 일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회사에 휴직을 요청했습니다.

 

회사에서도 제 상황을 이해해줬고, 당시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약 1년 반 동안 휴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휴직을 시작했다고 바로 편안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쉬면서도 회사 생각만 하면 화가 났고, 한편으로는 저 혼자 도망쳐 나온 것 같은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회사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이 생겼고, 그렇게 화가 나던 상황들도 조금씩 흐려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회사가 없는 제 일상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일을 완전히 떠나 있던 시간이 회복 과정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경험입니다. 모든 번아웃에 장기휴직이 필요하다거나 휴직만 하면 해결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번아웃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번아웃 이야기를 하면 운동, 명상, 취미, 휴가 같은 개인적인 관리법이 자주 나옵니다. 물론 이런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업무량이나 근무시간, 역할과 책임, 의사결정 구조처럼 스트레스를 만드는 환경이 그대로라면 개인에게 ‘마음을 잘 관리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도 근무환경과 업무조직을 바꾸는 조직 차원의 개입이 번아웃이나 소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개입 방법과 직종에 따라 효과가 다르고 연구의 한계도 있어 하나의 해결책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제 경험을 돌아봐도 단순히 일이 많았다는 것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책임은 커졌는데 제가 바꿀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었고,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을 반복해서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 저에게는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래서 번아웃을 겪는 사람에게 무조건 ‘마음가짐을 바꿔라’거나 ‘좀 쉬면 괜찮다’고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계속 소진되고 있는지도 같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직한 뒤, 오히려 일이 다시 재미있어졌습니다

 

휴직을 마치고 다시 회사로 돌아올 때는 한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예전처럼 일에 저 자신을 전부 쏟아붓지는 말자. 일과 나 사이에 조금은 거리를 두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오니 새로운 업무를 배우는 일이 다시 재미있어졌습니다.

 

예전 일을 떠올리는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한동안은 생각만 해도 화가 나고 속상했던 일들이 이제는 그렇게 아프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 우리 정말 열심히 했었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재미있었던 기억도 더 많이 떠오릅니다.

 

번아웃과 우울증을 겪었던 시간이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겪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그 시간을 지나면서 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곧 좋은 직장인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오래 일하려면 잘 쉬는 것도 필요하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는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일이 제 삶에서 중요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곧 제가 될 필요는 없었습니다.

 

혹시 지금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요즘 비슷한데’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번아웃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 저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도 아니고, 제가 했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도 정답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잠이 계속 무너지거나,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거나, 일뿐 아니라 생활 전반이 힘들어지고 있다면 ‘내가 좀 더 참으면 되겠지’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도 오래 버텼지만 결국 제 경우에는 더 잘 버티는 방법만으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쉬는 시간과 치료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일과 저 자신을 조금 떨어뜨려 놓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일하고 있고,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도 즐겁습니다.

 

그래서 번아웃을 겪었던 그 시기를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어떻게 일해야 오래 갈 수 있는지를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참고자료

 

World Health Organization, Burn-out an occupational phenomenon

WHO가 ICD-11에서 번아웃을 직업적 현상으로 설명하고 소진, 일에 대한 심리적 거리·부정적 감정, 직업적 효능감 저하의 세 차원을 제시한 자료입니다.

WHO에서 번아웃 설명 보기

 

World Health Organization, Depressive disorder (depression)

우울증의 주요 증상과 치료 가능성, 우울증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흔한 정신건강 질환이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WHO에서 우울증 설명 보기

 

Bianchi R, Schonfeld IS, Laurent E. (2015), Burnout-depression overlap: a review

번아웃과 우울증의 개념적·경험적 중첩을 검토한 리뷰 논문입니다.

PubMed에서 논문 보기

 

Bes I, Shoman Y, Al-Gobari M, et al. (2023), Organizational interventions and occupational burnout: a meta-analysis with focus on exhaustion

업무량, 근무 일정, 참여적 조직 개입 등 조직 차원의 변화가 직업적 소진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메타분석입니다.

PubMed에서 논문 보기

 

※ 이 글의 개인적인 경험은 제가 직접 겪은 과정을 기록한 것이며, 번아웃이나 우울증을 진단하기 위한 기준이 아닙니다. 비슷한 증상이 지속되거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면 의료진 또는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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