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감옥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 SPE) 또는 루시퍼 이펙트, 루치펠 효과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1971년에 했던 심리학 실험이다. 70명의 지원자 중 대학생이었던 24명이 선발되어 죄수와 교도관 역을 나누어 맡았으며,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과 건물 지하에 있는 가짜 감옥에서 살았다. 이때 역할은 무작위로 정했고 그들은 각자의 역할에 예상보다 잘 적응했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권위적으로 행동했고 심지어는 가혹행위를 하기까지 했다. 그 중 2명의 죄수는 초기에 너무 화가 나서 중간에 나갔으며 모든 실험은 실험 시작 이후 6일 만에 갑작스럽게 종료되었다. 실험의 진행 상황과 그 결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쟁의 여지가 있고, 촬영된 모든 실험 장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로부터 30년 후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실험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었다.
짐바르도 교수의 팀은 수감자와 교도관 각각의 특징이 감옥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라는 생각을 시험하기 위해 이 실험을 시작했다. 고용된 참가자들에게는 2주간 감옥에서 생활할 것이라는 말을 전했으며, 그 대가로 정해진 일당을 받도록 약속되었다. 70명의 지원자 중 짐바르도는 심리적으로 안정되었고, 육체적 및 정신적 장애가 없으며 과거 범죄나 약물 남용 이력이 없는 남자 24명을 선발했다. 이 24명은 모두 미국이나 캐나다의 중산층 이상 가정 출신의 좋은 교육을 받은 남자 대학생들이었다. 감옥은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건물인 조던 홀의 지하실에 위치했다. 대학생인 실험 도우미들은 수감자였으며 짐바르도는 교도소 감독관이었다. 짐바르도는 참가자들이 그가 사전에 원했던 방향인 감각 상실, 자아감 상실, 몰개성화와 같은 상황이 촉진할 수 있도록 특별한 상황을 만들었다. 최초의 실험에서는 24명의 선발인원 중 교도관 9명, 죄수 9명만이 참가하였다. 나머지 인원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투입되기 위해 대기중이었다. 이는 조던 홀 지하에 제작된 감옥의 크기가 24명 모두를 동시에 실험하기에는 협소했기 때문이다. 교도관은 3명씩 3개조로 나누어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하도록 지시했으며, 죄수들은 3개의 감방에 각각 3명씩 수용되었다. 실험 참가자 중 교도관 역할을 맡은 사람은 무기와 가짜 교도관 옷을 받았고,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선글라스도 지급되었다. 수감자들에게는 그들이 끊임없이 불편함을 느끼도록 크기가 맞지 않은 겉옷과 머리에는 스타킹을 씌웠다.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을 이름 대신 옷에 적힌 그들의 고유 번호로 불렀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참가자에게는 모든 통제권을 가지고 있으며 수감자는 어떠한 힘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 수감자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은 실제 수감자들처럼 행동하고 그들의 집에서 강도 혐의로 체포되었다. 경찰서에서는 짐바르도 교수를 도와 모든 수감자들에게 행하는 지문 채취, 미란다 고지, 범인 식별용 사진 촬영 등을 진행했다.
실험이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아 실험은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 교도관들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받은 수감자들은 괴로워했고, 그 행위는 용인되었다. 이런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결국 억제로 인한 반란을 초래했고, 실험이 끝날때까지 감정적 혼란이 많이 일어났다. 겨우 36시간이 흐른 후, 짐바르도는 한 수감자가 미친 짓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소리 지르고 저주했다. 그가 매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고 연구원들은 그를 풀어줘야했다. 그가 사람들을 데려와 남은 수감자들을 내보낼꺼라는 소문이 돌았고, 교도관들은 감옥을 철거하고 수감자들을 다른 장소로 옮겼다. 하지만 어떠한 시도도 일어나지 않았고 교도관들은 자신들의 헛수고에 화를 냈다. 교도관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수감자들을 괴롭히고 신체적 고통을 주기도 했다. 급격히 위생상태가 악화되었으며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이 생리적 현상을 못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몇몇 수감자들은 벌거벗은 채로 다니도록 강요받기도 했고, 성적 모욕을 받기도 했다.
짐바르도는 그의 실험에 점점 몰두하며 적극적으로 실험에 참여했다. 4일째 되는 날, 몇몇 수감자들은 탈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짐바르도와 교도관들은 그들을 더 안전한 지역의 경찰서로 보내려고 했지만 공무원들은 더이상 실험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실험이 진행되면서 일부 교도관들은 폭력적으로 변했고 실험자들은 교도관 중 30% 정도는 진짜로 잔학한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실험이 일찍 끝났을 때 교도관들은 대부분 화를 냈다. 실험 넷째날 가석방 신청이 실시되었고 죄수 역의 피험자들 다수는 돈을 내고서라도 감옥에서 나가겠다고 응답했지만 모두 무산되었고 분위기는 더욱 악화되었다. 실험 다섯째날 교도관 역의 피험자들이 죄수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고문하고 성적 학대를 하는 것이 관찰되었고 이를 본 피험자들의 부모와 동료 교수들이 실험을 그만 둘 것을 요구했고 조기에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결과는 사람들이 합법적인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제도적 지지를 받고 있을 때 사람들의 민감성과 복종을 입증하는 데 끊임없이 논쟁이 있었다. 또 이 실험은 인지부조화와 권력의 힘 관계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 실험은 귀인 이론을 지지하기도 했는데, 이 상황은 그들이 각자의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참가자로서의 행동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평범한 사람이 시험관의 명령에 의해 타인을 충분히 감전시킬 수 있는 전류를 내보내는 실험인 밀그램 실험과도 양립할 수 있다. 후에 산 쿠엔틴 형무소와 아티카 형무소에서 끔찍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짐바르도는 그가 실험에서 얻은 결과를 미국 하원 사법부 위원회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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